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현대 쏘나타/2세대 (문단 편집) === 수출시장에서의 고전 === 현대자동차에서 Y2가 두각을 드러내고 수출도 많이 하게 되자, 북미 시장에 공급하기 위해 [[캐나다]] [[퀘벡 주]] [[몬트리올]] 근처에 있는 [[현대자동차 브로몽 공장|브로몽]]에 연간 10만 대 규모의 현지공장을 1986년 9월에 착공하여 1989년 7월에 완공했고, 이 곳을 북미 수출 기지로 활용하고자 했다. 따라서 Y2는 [[대한민국]] 외의 지역에서 생산된 최초의 한국산 승용차이다. 당시 3억 2,000만 [[캐나다 달러]](당시 환율로 약 2억 9,000만 달러)가 투입됐다. 퀘벡 주 정부에서는 상징적인 의미에서 부지를 단돈 1달러에 제공하는 특혜를 줬다. 그러나 오히려 현대자동차의 이 전략은 실패하고 말았다. 1989년1만 5천대, 1990년 2만 7천대, 1991년 2만 8천대, 1992년 1만 5천대, 1993년 1~9월 1만 4천대 등으로 실적이 저조했다. 당시 북미 시장에서 [[일본]] 회사들의 [[미국]] 현지생산이 늘어나 공급 과잉 상태였던 북미 시장에서 현대자동차는 품질이 상대적으로 떨어져 외면받았다.[* 사실 울산 생산분보다 브로몽 생산분 자체는 품질이 더 좋았다고 하지만 1990년대에 미국에서 생산된 '캠리'나 '어코드' 등이 일부 대한민국에 들어와서 팔리기도 했다. 당시는 수입선 다변화 정책이 걸렸던 기간이다.] 브로몽 공장은 결국 1993년 10월에 가동이 중단됐다. 이후 [[현대 엘란트라|엘란트라]]의 생산 기지로 개조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으나, 경제성이 없다고 판단, 1996년 2월 현지 법인인 현대모터캐나다가 청산에 들어가게 되어 현대자동차의 [[흑역사]]로 남은 채 역사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이를 [[현대자동차]]에서는 '''"브로몽의 악몽"'''으로 부르고 있다. 후에 [[정세영]] 회장은 자서전에서 “충분한 북미 시장의 조사 없이 브로몽에 공장을 건설했던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성급한 결정이었는지 뼈저리게 느꼈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브로몽을 입지로 선정한 것도 잘못된 요인이었는데, 브로몽은 인구가 적어 노동자 수급이 원활하지 않았다. 거기에다가 주변에 자동차 부품을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이 없어서 대한민국에서 부품의 60%를 조달해야 했다.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현대자동차의 고질적인 문제인 '''파업'''이 있으면 부품 공급은 아예 되지 않았을 뿐더러, 캐나다에 공급할때에도 관세를 물어야 했다. 여담으로 해당 공장에서 만들어진 쏘나타를 지역 경찰들이 경찰차로 활용한 바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